카르고 / KARGO
가라앉는 배 위에서
자신의 피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32번째 시도.
(32. Versuch auf einem untergehenden Schiff
aus der eigenen Haut zu kommen)
토마스 브라쉬 / Thomas Brasch
★ 독일문화원 번역지원금 선정작

『카르고』가 출간된 이후로
동독에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그가 그것들을 쓰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 하이너 뮐러 (1977) –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는 잃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에, 나는 머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는 버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들을, 나는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곳에서는,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죽는 곳, 그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
머물고 싶다, 한 번도 있어본 적 없는 곳에.– 토마스 브라쉬 (종이호랑이 中) –
번역/디자인: 라삐율
분량: 264쪽
판형: 125 x 200 mm
제본 방식: 스위스 제본
한정 부수: 800 권
선주문 특가: 17,500 15,750원
출간 예정일: 2026년 3월 11일
토마스 브라쉬 (Thomas Brasch, 1945-2001)
그는 독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번역가, 영화감독으로, 전후 독일 분단 역사와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정치적·정서적 균열을 가장 급진적이고 집요한 언어로 탐구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러한 급진적 언어 형식과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하고 중의적인 글쓰기 방식 때문일 것이다.
1945년, 유대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나치를 피해 여러 지역을 돌던 와중, 영국 웨스토우에서 그를 낳았다. 종전 후, 1946/47년,그들은 소련점령지역이 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하기 시작한다. 망명 기간에 헌신적인 사회주의자가 된 아버지는 곧바로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에 입당해 정치적 노선을 걸으며 사회주의 건설에 동참한다. 그는 브란덴부르크 주 교육부 장관과 동독 문화부 차관 등 여러 고위 관직에 재직하며 통제와 검열, 지도 등의 업무를 총괄했다. 어머니는 언론인이었다.
시스템이라는 살가죽
작가가 되고 싶었던 11살의 소년 토마스 브라쉬는 아버지의 의지로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에 격리된 채, 모든 일상의 통제와 지도, 폭력적 언행을 버텨야 했던 환경에서, 그는 세 동물이 서로 지배자가 되려다 모두 실패하는 내용의 우화 「여우, 독수리 그리고 하마(Fuchs, Adler und Nilpferd)」를 쓴다. 지역 신문에 실린 이 우화는 어쩌면 ‘시스템’이라는 살가죽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도를 예고한 최초의 신호였을 것이다.
동독에서 그의 시도들은 매번 좌초되었다. 실존주의적 견해를 가진 사상적 일탈자라는 이유로, 또는 국가 기관이나 인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좌익 급진주의적이라며, 반국가 행위를 선동한다며, 그의 작품은 거의 매번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출판되지도 상연되지도 못했다. 다 준비된 공연도 총 리허설이나 초연 이후 상연이 금지되었다. 1975년에 발표된, 월간 시집 『포에지 앨범(Poesiealbum) 89호, 토마스 브라쉬』 만이 동독의 검열을 – 출판사의 치밀한 전략 끝에 – 통과한 유일한 출판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토마스 브라쉬는 (아버지가 대변하는) 국가 권력에 맞선 반체제 예술가, 반항과 예술적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언론학을 전공하던 시기에는 정치적인 포스터 캠페인에 참여해 1년 만에 퇴학을 당했고, 1968년에는 동료들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프라하 침공을 비난하는 전단을 뿌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27개월 징역형 선고와 함께, 다니던 영화예술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했다. 당시 문화부 차관이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신고해 자신의 충성심은 증명하고 아들은 슈타지 감옥에 들어앉게 만들었다.
“나는 내 피부밖에 없어”
1976년 말, 브라쉬는 서독인들이 “저편”이라 부르던 동독에서 그의 “저편”인 서독으로 자신의 영토를 바꾼다. 이주한지 몇 주만에 발표된 단편집 『아버지들에 앞서 아들들이 죽는다(Vor den Vätern sterben die Söhne)』는 서쪽에서 대단한 호평과 주목을 불러일으켰고, 이어서 6개월 후 그의 시, 산문, 희곡, 인용문, 문서, 사진 등이 혼합된 몽타주 선집: 『카르고. 가라앉는 배 위에서 자신의 피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32번째 시도』가 발표되며, 그는 그의 삶의 가장 활발한 창작의 기회들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탈 동독 후 그는 서독에서도 소속감을 갖지 못한 채(거부한 채),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하였고, 1983년부터는 국적을 포기한 채 무국적자로 살았다.
카르고 / KARGO (1977)
『카르고』는 브라쉬의 언어 감각과 정치적 긴장을 가장 응축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오이디푸스, 카산드라, 오일렌슈피겔, 돈 후안, 흘레브니코프 등의 제목들만으로도 그의 글의 풍부한 상호텍스트성을 읽어낼 수 있는 이 몽타주 선집은 도발적이면서도 모호한 책이다. 거의 대부분의 글은 섬광처럼 번쩍이다 순간 소멸하듯, 깨어진 이야기처럼, 찢어진 이야기처럼, 막간극처럼, 미완의 단편처럼 나열되어, 사이사이에 삽입된 이미지들과 함께 스스로 이미지가 된다.
이 책이 서독에서 출판되자 – 그보다 16살 연상이었던 – 하이너 뮐러는 동독에서 그에 대한 지지의 뜻을 담은 서평을 서독의 매체인 슈피겔 지에 기고했다.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감시와 통제를 받던 뮐러가 동독에서 브라쉬의 신간을 입수해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뮐러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의 “특권”이었고, 동독에 거주하면서 서독의 대표적 주간지에 서평을 남길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문학적 위상과 명성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뮐러는 이 책에 있는 텍스트들이 “거의 예외 없이 징후적이라는 점, 다시 말해 그것들의 역사적 전제조건을 비판에 내맡기고 있다는 점이 이 텍스트들의 본질(Qualität)을 결정한다”라며, 마지막에는 “『카르고』가 출간된 이후로 동독에서는 더 이상 누구도 그가 그것들을 쓰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여러 신화와 역사적 배경이 그를 감싸고 있음을 읽는다. 그리고 그를 감싸고 있는 그 껍질은 폭력이 남긴 흉터로 가득해 보인다. 피부는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외피이기도 하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현현해 보이는 표면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 실패가 자명한 – “자신의 피부로부터 벗어남”의 메타퍼는 이 책 안에서 다층적으로 상호 충돌하고 보완하며 모든 이념적, 예술적 장벽을 허물려 한 그의 “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였었더라도, 그 시도 덕분에 우리는 적어도 그의 껍질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은 맨 첫 번째 글의 문장들을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반대 방향으로 배열한 것이다. 이로써 이 책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시작되어 이 책의 첫 문장으로 끝난다. 실패한 혁명은 그렇게 이미 말해진 언어 속에서 다시 말해진다.
『카르고』 이후
그는 레싱 문학상, 게하르트-하우프트만 장학상, FAZ 문학상, 클라이스트 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이주하기 이전의 작품들과 새로 집필한 작품들을 활발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주요 희곡으로는 「로터(Rotter)」, 「러블리 리타(Lovely Rita)」, 「친애하는 게오르크에게(Lieber Georg)」, 「여인. 전쟁. 희극(Frauen. Krieg. Lustspiel)」등이 있고, 가장 대표적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9월 27일(Der schöne 27. September)』이 있다. 그는 1981년에 발표한 영화 「철의 천사(Engel aus Eisen)」로 바이에른 영화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그 후에 만든 영화로는 「도미노(Domino)」, 「메르체데스(Mercedes)」, 「The Passenger – Welcome to Germany」등이 있다. 1989년에 장벽이 붕괴된 이후로는 수년간 침묵을 지키며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고, 1992년부터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 『소녀 살해범 브룬케(Mädchenmörder Brunke)』를 집필하였다. 1999년에 그 일부를 공개한 후에도 집필이 계속된 이 소설은 2001년 그의 사망으로 16,000 페이지 가량의 미작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심부전으로 5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본문 예시


역자 소개
라삐율 / Lappiyul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하며, 시각예술(주로 설치미술), 시노그래피, 공연 연출, 디자인, 번역, 출판, 기획 등 활동의 분야가 다양하다. 대개는 이런 분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긴장판이 주요 활동 분야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물들을 행위자로 제시한 상연적 설치작업, 연극의 ‘발생’을 의도한 연출 지문으로서의 출판, 칠흑같은 암흑 속에 제시한 비주얼-오디오극. 그밖에도 기획자로서 (주로 다원적인) 프로젝트를 여럿 실행해왔다. – 주요 번역으로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팟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 하이너 뮐러의 『프로메테우스』, 페터 한트케의 『카스파』와 『말 타고 보덴호 건너기』가 있고, 김태용의 소설 『제0장: 뜻밖의 모든 것』을 독일어로 번역해 한독 이중언어 책과 오디오극을 제작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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