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브라쉬의 영화들
* 토마스 브라쉬에 대한 정보는 “<카르고> 책소개”를 참고.
<카르고> 출간을 계기로, 토마스 브라쉬가 제작한 네 편의 영화 – 철의 천사, 도미노, 메르세데스, 승객 – 가 김태용(소설가/시인) x 라삐율(이오-에디션 대표) x 지하실(1인 아트하우스 영화 OTT 플랫폼)의 협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이후 작가로서 먼저 이름을 날린 브라쉬는 공연과 영화 제작으로도 선언적인 창작을 이어갔다. 그가 남긴 영화는 단 네 편이지만, 이 네 편의 놀라움은 각 영화가 매번 다른 종류의 비타협적 실험성과 정치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각 매체의 특성에 맞게 변주하고 투사하는 것을 넘어, 문학, 연극, 영화가 되먹임 되는 구조를 훌륭하게 만들어낸 사람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서 그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과 상호텍스트적이고 영화적인 몽타주 방식은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다루는 방식에서 또 다른 파장과 파열(균열, 교란, 불협화음)로 증폭된다. 그는 <카르고>에서 자신의 존재 조건이자 한계인 ‘피부’로부터 벗어나려는 문학적 시도를 통해 ‘언어’를 더 이상 자기 내부를 드러내는 ‘표면’이 아닌,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힘으로 보게 한 바 있다. 이러한 충동은 그의 영화에서도 그대로 노출된다. 단지 ‘피부’가 ‘스크린’으로 바뀌었을 뿐.
상영 일정 및 부대 행사
* 이번 상영회는 지하실의 [토마스 브라쉬 감독전]을 통해 5월 25일부터 온라인으로 먼저 개봉된 후,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 외 다른 예술영화관으로 확대 상영될 예정이다.
* 모바일에서는 표를 좌우 스크롤 해서 볼 것.
| 날짜 | 상영관 | 상영 영화 | 상영 시간 | 러닝타임 | 부대행사 | |
|---|---|---|---|---|---|---|
| 5/25 -7/25 | OTT ‘지하실’ | 전 4편 | 온라인 상시 관람 | 70-118 min | – | 보러 가기 |
| 6/20 | 인디스페이스 | 철의 천사 | pm 4:10 | 105 min | – | 예매하기 |
| 승객 | pm 6:00 | 102 min | 상영 후 시네토크 (김태용x라삐율) | 예매하기 | ||
| 7/7 | 서울아트시네마 | 메르체데스 | pm 5:00 | 70 min | – | 예매하기 |
| 도미노 | pm 7:00 | 118 min | 상영 후 시네토크 (김태용x김성욱) | 예매하기 | ||
| 7/25 | 무사이(부산) | 철의 천사 | am 11:00 | 105 min | – | 무료상영 |
| 도미노 | pm 1:00 | 118 min | – | 무료상영 | ||
| 메르세데스 | pm 3:30 | 70 min | – | 무료상영 | ||
| 승객 | pm 5:00 | 102 min | – | 무료상영 | ||
| … | <오프라인 | 일정 추가 | 업데이트 | 예정> | … | … |
영화 소개
철의 천사 / Engel aus Eisen
105분 / 1981 / 독일어 / 청소년관람불가
★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1948년 여름, 소련 점령 구역과 서방 점령 구역으로 갈라진 베를린. 하늘에는 섬처럼 봉쇄된 서방 점령 구역에 물자를 공수하는 서방의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다닌다. 종전 직후, 분단 직전의 이 무정부상태에서 청년 글라도(Gladow)는 갱단을 조직해 동서 관할 구역을 넘나들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그러다 전직 사형 집행관이었으나 이제는 시대의 폐기물이 된 푈펠(Völpel)과 결탁한 글라도는 그가 제공한 더 많은 정보로 각 구역을 넘나들며 더 큰 한탕을 추구한다. 그러나 봉쇄가 풀리면서 그가 절묘하게 누볐던 그 틈새도 사라지고, 그가 누린 무정부적 여름도 결국 막을 내리고 만다.
‘베르너 글라도’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허구인 이 영화에서 브라쉬가 제시하는 인물들은 역사적·사회적 조건의 산물들이자, 경계를 통해 살아가는 자기모순적 존재들이다. 이원론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들의 궤적을 브라쉬는 국가 권력에 대한 무정부적 저항의 우화로서 제시한다. 브라쉬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1981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독일 영화였다. 그러나 정작 화제가 된 것은 그 후에 받은 바이에른 영화상이었다. 당시 브라쉬는 정치적 입장이 자신과 정반대인 바이에른 주지사로부터 영화상을 받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에 대한 지인들의 우려에 일부러 상을 수락함으로써 이 모순된 상황을 대중에게 환기시켜 보였다. 그리고 수락 연단에서 “이 모순이야말로 희망의 원천”이라 말하고, 동독에서 자신이 다니던 영화학교에 감사를 표했다.
도미노 / Domino
118분 / 1982 / 독일어 / 청소년관람불가
★ 로카르노 영화제 은표범상

싱글맘 ‘리자(Lisa)’에겐 유명 배우로서 역할을 옮겨 다니며 경력을 쌓고, 그렇게 자신과 딸의 생계를 꾸려가는 것 전부가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늘 들락날락했던 집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집 안에 갇혀, 간신히 창문을 통해 집을 빠져나와 극장에 도착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후 좌파 연출가인 레르터(Lehrter), 시골 출신 극작가 브룬케(Brunke), 동료 배우의 지인인 촐너(Zollner), 두 성매매 여성 등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녀 삶에는 균열이 생기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다.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새해 첫날 사이에 벌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당시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삶의 조건을 좌우하는 배경처럼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실업이 급격히 증가하던 냉전 시기에 저예산으로 28일 만에 제작되었다. 대부분의 장면은 브라쉬가 살던 아파트에서 찍은 것이다. 브라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 카타리나 탈바흐는 자신의 정체성과 매우 맞닿아 있는 리자의 역할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 내었다. 이 영화는 그 시대와 당시 베를린 사투리가 생생하게 담긴 시대의 자화상, 또는 시대적 스냅샷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메르세데스 / Mercedes
70분 / 1985 / 네덜란드어 / 청소년관람불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호한, 축축한 물가 같은 곳에, 폐기된 듯한 메르체데스 한 대가 서있다. 실직 상태인 오이(Oi)와 사코(Sakko)가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그 둘이 어떤 사이인지, 그것이 진짜 대화인지, 역할극인지 알 수 없다. 그 둘이 보는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도 알 수 없다. 어떠한 주제라 할 수 없는 대화들이 파편적으로 시간을 메우듯 흘러간다. 세상 이야기, 일자리 부족, 전쟁, 정치, 사랑, 섹스, 독말풀…
<메르체데스>는 논리적인 대화라기보다는 정적을 깨트리는 파편화된 소리에 가까운 등장인물들의 발화가 과장된 일상의 소음들과 함께 청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영화다. 강한 명암 대비와 실험적인 카메라 기법은 영화 속 흐름을 더더욱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한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마구 질주할 것 같은 “메르세데스”라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파격적으로 정적이다. 그럼에도 그 시적 긴장감이 눈과 귀의 집중을 영원히 정체된 듯한 흐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만든다. 브라쉬는 (행동이 아닌) ‘자세’를 취하는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고착상태를 이 영화의 정치적 측면으로 보았다.
원래 이 작품은 브라쉬가 스위스에 체류하며 집필한 희곡이었다. 1983년 같은 동독 출신 연출가인 마티아스 랑호프(Matthias Langhoff)의 연출로 취리히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 Zürich)에서 초연된 이후 네덜란드 VPRO 방송국의 제안으로 브라쉬가 직접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승객 / Der Passagier
– Welcome to Germany
102분 / 1988 / 영어, 독일어 / 15세 이상 관람가
★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나치 시절 유대인 강제수용소 생존자로 미국으로 망명해 영화감독이 된 코른필드(Cornfield)는 당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반유대주의 선전 영화에 단역으로 강제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사건의 전말을 영화화하기 위해 독일 땅을 다시 밟는다.
본 영화는 과거의 진실을 구성하는 코른필드의 작업 방식 및 과정을 ‘영화 속 영화 속 영화’ 이상으로 해체된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관객은 1942년 쾨르너(Körner) 감독이 제작한 선전 영화와, 그 영화의 현실을 담는 – 토니 커티스(Tony Curtis)가 연기한 – 코른필드 감독의 영화, 그리고 그 영화의 현실을 담는 토마스 브라쉬의 영화, 이 세 겹의 영화적 현실을 마주하며 그 사이를 구분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 유대인 혈통인 브라쉬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는 홀로코스트 생존 작가인 유렉 베커(Jurek Becker)가 참여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코른필드’ 감독 역을 맡은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 토니 커티스(Tony Curtis) 역시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다.
추천의 말
김태용 (소설가, 시인):
시, 소설, 희곡, 번역 작업을 하고 영화 네 편을 연출한 토마스 브라쉬의 책 『카르고』(라삐율 옮김, 이오에디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번역 과정에서 미리 원고를 보고 실험적 언어와 구성, 정치적 과격함에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토마스 브라쉬가 만든 영화에 대한 정보와 클립들을 찾아보며 한국 독자와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토마스 브라쉬 감독전]은 번역자이자 이오-에디션 대표인 라삐율과 1인 아트하우스 OTT플랫폼 지하실과 함께 기획했다. 1948년 베를린 상공을 떠다니는 서방 비행기의 폭음 아래 갱단 이야기를 다룬 <철의 천사>(1981년), 동서독 시기의 예술과 실업, 여성 몸의 문제를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만든 <도미노>(1982), 산업 기기인 자동차를 몽유와 소음의 무대로 극대화한 <메르세데스>(1985), 나치 시절 수용소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성공한 감독이 되어 당시의 영화를 재현하며 현재의 이스라엘 문제를 예견하는 듯한 <승객>(1988)과 더불어 비슷한 시기의 독일 문제를 공유한 알렉산더 클루게의 소설이자 영화 데뷔작인 <어제와의 고별>을 지하실을 통해 상영한다. 이후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를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의 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특유의 비유적 문장과 쉼 없이 쏟아지는 대사와 독백으로 가득한 영화를 보며 라삐율과 지하실의 자막 번역과 제작의 어려움이 전달되었다. 지하실의 온라인 상영본과 극장 상영본의 자막이 다소 다르다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보다 이는 다른 판본의 번역 책을 읽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토마스 브라쉬의 글에는 영화적 기법들이, 영화에는 문학적 언어들이 서로 맞물려 있어, 영화적 읽기와 문학적 상상의 문이 열린다. 21세기의 뿌연 눈을 씻고 들여다보면 모든 게 정치적 사안이고, 정치적 대결이고, 정치적 탈주처럼 보인다. 정치가 성공적인 예술이 될 때는 언어의 도파민이 분비된다. 토마스 브라쉬의 영화와 글을 만나게 될 분들의 반응이 몹시 궁금하다.
도현 (지하실):
시대의 평가를 완전히 비껴나간 것처럼 보이는 작가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내게는 토마스 브라쉬가 그렇다.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그의 존재는 동시대 활동했던 작가들과 감독들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애석히 여기기보다는, 세상이 놓쳐버린 그의 악마적 재능이 우리 눈 앞에서 유감없이 펼쳐질 때의 충격을 관객분들도 고스란히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라쉬의 작품들을 보며 떠오를 수많은 이름들 – 페터 한트케, 귄터 그라스, 사무엘 베케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알렉산더 클루게, 데이빗 린치 – 은 그가 활동했던 당시 혼란스러웠던 독일 사회의 정치·문화적 지형을 가늠케하면서도, 날카로운 송곳처럼 그 중심을 관통하고자 했던 브라쉬의 급진성을 이해하는 유용한 기준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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